더글로리 시즌1을 보고 감상 후기를 써 볼 정도로 이 드라마에 몰입했었기에 3월 10일 오후, 시즌2가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대로 바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 등에 몰입하면 계속 끝까지 보는 타입이라 새벽 2시 넘어 마지막 편까지 다 보았다.
역시 내공있는 김은숙 작가와 감독,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완벽한 복수극이 완성되었다.
완벽한 복수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복수극의 전개에서 극중 ‘문동은’이 스스로 말하였듯이, 자기는 판만 깔았는데 가해자들 자신이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것을 설득력있게 잘 표현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 간의 관계, 우정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러나 청소년 시절의 우정도 그것이 힘, 권력, 돈, 성적과 같은 이해관계 위에서 맺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허망하고 무서운 것이다. 모래로 쌓은 모래성 같은 것이다.
그러니 박연진, 전재준,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와 같은 패거리의 우정은 조금이라도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상대방을 배신하고 가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시즌2를 보면서 권선징악의 복수극이 주는 통쾌감도 있지만 삶의 한 진실을 보여주는 한 줄기 서늘한 무서움이 있다.
더 글로리 시즌1, 그리고 특히 시즌 2가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동안에 일어났던 고위공무원 직의 자녀 학교폭력 문제일 것이다. 더 글로리 드라마 때문에 그 학교폭력 사건은 더 주목을 받았고 그 심각성에 대한 더 큰 문제 제기가 가능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좋은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성찰해야 할 지점을 잘 밝히고 사람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한다. 흥미롭게. 그리고 가슴아파하면서 잘 본 드라마였다.
감상평의 끝으로 더 글로리 드라마의 사족(蛇足)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문동은과 주여정은 아버지의 살해범에 대한 복수를 위해 교도소로 각기 의사, 자원봉사자인 강사로 들어가는 장면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부분이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 등이 많이 다루는 주제 중의 하나가 사적 복수이다. 최근에 인기를 모았던 ‘모범택시’ 같은 드라마도 사적 복수를 다루고 있다.
근대사회는 사적 복수를 금하고 법제도에 의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법제도가 미비한 부분이 있어도, 사적 복수가 허용된다면 사회는 더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글로리’의 경우처럼, 공정한 법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기에 문동은은 사적복수를 행하고 있다. 사적 복수는 통쾌함 그리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인 심각한 위험성이 공존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연진아, 천천히 우리 같이 말라죽어 가보자’는 문동은의 말처럼, 복수하는 자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없고 자기자신도 황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완벽한 복수극을 완성한 문동은은 사랑하는 남자, 주여정을 두고 왜 목숨을 버리려고 했을까. 피치못할 복수였지만 손에 피를 묻힌 자신을 용납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혜정의 손을 빌려 전재준의 두 눈을 멀게도 하지 않았는가?
주여정 어머니의 만류를 통해 새 삶을 살기로 한 문동은의 결정은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후에 주여정 부친의 살해범, 강영천에 대한 복수를 꾀하는 것은 오버이다.
‘나는 이미 벌을 받고 있는데?’라는 강영천의 말은 사실이다. 무기수로 처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감옥에서 강영천은 끊임없이 주여정에게 모욕스런 편지를 보내어 주여정은 지옥같은 괴로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주여정이 편지 수신을 중단하고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강영천은 싸이코패스이다.
주여정과 그의 어머니는 다같이 의사인데, 싸이코패스인 정신병자의 말과 편지에 휘둘리는 것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설사 싸이코패스가 아니더라도 감옥에서 무기징역 처벌을 받은 살인범이 뉘우치지 않으면 사적복수를 해야 하는가.
무기수인 싸이코패스를 징벌하기 위해 교도소에서의 복수극을 꾀하는 것은 드라마 앞부분에서 보여준 학교폭력의 무서움, 문동은의 피치 못할 사적 복수의 처절함, 통쾌함과 잘 매치되지 않는다.
사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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